책소개
이상은(李商隱, 812∼858)은 만당(晩唐)의 시인으로 자(字)는 의산(義山), 호는 옥계생(玉溪生), 혹은 번남생(樊南生)이라 한다. 정교한 대구(對句), 풍부한 용전(用典), 기발한 상상력, 깊은 슬픔으로 이루어진 그의 시는 생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의 상찬을 받을 정도로 뛰어났으나 그의 일생은 고난과 실의로 점철되었다. 중국 문학사에서는 그런 그를 재주를 품었으나 시대를 잘못 만난, 우울한 시인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일생이 슬픔뿐이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그 이유는 바로 그에게 ‘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인생이었다 해도 몇 십 년을 사는 동안 어떻게 단 한 번의 기쁨도 없었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인생의 슬픔을 ‘시’라는 언어 예술을 통해 아름답게 승화시켰던 사람이다. 남겨진 그의 시를 해독하기란 필자에게 수많은 주석서를 짚고서도 어둠 속에서 미로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어려운 작업이었으나 비밀을 엿보는 순간-어쩌면 이조차도 착각일 수 있겠으나-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맛보게 되었다. 그런데 필자가 나누어 받은 한 줄기 빛과 같은 이러한 감동의 첫 번째 수혜자는 당연히 시인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이상은의 삶이 슬픔만은 아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현존하는 이상은의 시는 약 600수로 추정하고 있다. 본서에서는 여러 가지 선집과 연구서들을 참조해 총 68수를 뽑았으며 이 시들을 생활(15수), 역사(14수), 사물(12수), 사랑(15수), 인생(12수)이라는 이름으로 구분해 순서대로 수록했다.
200자평
만당을 대표하는 시인 이상은. 불운한 인생을 시로 승화했기에 슬픔의 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치적 이상과 우정을 노래했던 중국 시단에 애정시의 아름다움을 깊이 각인했다. 기려한 표현, 정교한 구성, 섬세한 감성, 풍부한 전고, 그리고 그 밑에 흐르는 깊은 슬픔을 느껴 보자.
지은이
이상은의 원적(原籍)은 회주(懷州)의 하내[河內, 지금의 허난성 친양현(沁陽縣)]였으나 조부 때부터 형양[滎陽, 지금의 허난성 정저우(鄭州)]으로 옮겨 살았다. 일생 동안 헌종(憲宗), 목종(穆宗), 경종(敬宗), 문종(文宗), 무종(武宗), 선종(宣宗)의 여섯 황제를 거쳤다. 9세 때 부친이 사망해 생활이 매우 곤궁했다. 뼈저린 가난은 그가 공부에 전념하는 동기가 되었으며 하루빨리 성공해서 가족을 잘 부양하고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상은은 학습 속도가 빨랐으며 16세에 이미 <재론(才論)>, <성론(聖論)>을 지어 당시 문사들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문종(文宗) 대화(大和) 3년(829, 18세) 당시, 천평군절도사(天平軍節度使)인 영호초는 어린 나이에 비상한 재주를 지닌 이상은을 알아보고 그를 막료로 불렀다. 이때부터 문종 개성(開成) 2년(837, 26세) 영호초가 사망하기까지 이상은은 중간에 1년 남짓 오촌 당숙인 최융(崔戎)을 따라 연해관찰사의 막부에서 막료 생활을 했던 것을 제외하면 줄곧 영호초의 막부에서 생활했다. 영호초는 이상은을 자신의 아들인 영호도와 함께 수학할 수 있도록 배려했고 그에게 변문(騈文)을 쓰는 방법을 전수했다. 이러한 경력으로 이상은은 시에서 정확한 대구(對句), 풍부한 전고(典故), 화려한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시뿐만 아니라 변문 문장가로도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문종 개성 2년(837, 26세) 진사에 합격하지만 은인인 영호초가 사망하고 나자 연줄이 없는 그에게 벼슬길은 열리지 않았다. 얼마 후 그는 절도사 왕무원(王茂元)의 요청으로 경주(涇州,지금의 간쑤성 징현 북쪽)로 가서 막부의 막료가 되었으며 왕무원의 눈에 들어 그의 사위가 되었다. 이 혼인은 이후 그의 생애가 우이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시발점이 된다. 왕무원은 이덕유(李德裕)와 친분이 있어 정치적 계보상 이당(李黨)에 속했다. 당시 당파적 이해관계를 따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스승이자 후견인이었던 영호초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반대당의 사위가 되는 것은 명백한 배신행위로 비쳤다. 그러나 막상 이덕유가 득세한 시기에 이상은은 모친상으로 벼슬을 내려놓아야 했고, 3년상이 끝나자 이덕유는 실각했고 왕무원도 사망해 이상은은 고립무원이 되었다. 결국 중앙 조정을 포기하고 막부를 전전하다 대중 12년(858, 47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옮긴이
김의정은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한양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등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의 전문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비애가 아름답게 시로 승화되는 순간에 관심을 가지며 미학 용어 흥(興)에 대해 연구했고 시인으로는 두보 이외에 이상은(李商隱), 이하(李賀) 등 탐미적이고 몽환적인 당대 시인에 대해 연구했다. 최근에는 중국 고전시를 대중적으로 풀어 쓰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 밖에 중국 문학 속의 나무 이미지, 명청대 여성 시인 및 강남의 생활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논문으로 <두보 기주 시기 시 연구(杜甫 夔州時期 詩 硏究)>(박사 학위논문), <이하(李賀) 시에 나타난 신화와 여성 이미지>, <이상은(李商隱) 시에 나타난 운우몽(雲雨夢) 전고(典故)의 패러디>, <이시영·흥(興)·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백두음(白頭吟), 누구의 노래인가-역대 백두음의 화자 문제와 명대 여성 시인 육경자(陸卿子)의 의의>, <명대 여성 시에 나타난 전통과의 대화 방식-서원(徐媛)을 중심으로>, <이인(李因)의 시를 통해 본 명대 여성 여행의 의미>, <디지털 시대의 나무 문화 읽기-계수나무를 중심으로>, <시는 어떻게 광고가 되는가?-중국 고전시의 문학콘텐츠 활용방안> 등이 있으며, 저역서로 ≪두보 평전≫(호미출판사, 2007), ≪두보 시선≫(지식을 만드는 지식, 2009), ≪천천히 걷는 게 수레보다 좋구나-이인 시선(李因詩選)≫(도서출판 사람들, 2011), ≪한시리필: 영웅, 달, 음악≫(차이나하우스, 2011), ≪한시리필: 우연+우연=운명≫(차이나하우스, 2011), ≪중국의 종이와 인쇄의 문화사≫(연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3) 등이 있다.
차례
1. 생활
낙씨(駱氏)의 정자에 묵으며 최옹(崔雍), 최연(崔袞)을 그리며
낭중 영호도(令狐綯)에게 부침
일상의 나날
담주에서
두목에게
장난꾸러기
처남 왕십이(王十二)와 동서 한첨(韓瞻)이 방문해 술 마시자 청했지만, 아내의 상중이라 가지 않고 시를 부치다
두보가 촉에서 떠나가며
2월 2일
밤에 술 마시며
한악(韓偓)이 즉석에서 시를 지어 송별해 좌중이 모두 놀랐다. 훗날 한가로워 ‘며칠 밤 계속해서 모시고 앉아 오래 배회하며(連宵侍坐徘徊久)’라는 구절을 추억하며 읊조렸는데, 성숙한 기풍이 있었다. 이에 절구 2수를 지어 답례하고 아울러 원외(員外) 한첨(韓瞻)에게 보여 드린다
밤비 내리는데 북쪽에 부치다
광일 스님을 추억하며
꽃 아래서 취하다
2. 역사
젊은 부평후
마외 2수, 제2수
요지
몽택
초나라 궁전
초나라 궁전을 지나며
주필역에서
역사를 노래함
수나라 궁궐 1
수나라 궁궐 2
궁궐의 가기(歌妓)
가의(賈誼)
항아
유감
3. 사물
회중의 모란이 또 비에 쓰러지다 2수
낙화
어지러운 바위
가지를 옮겨 우는 꾀꼬리
매미
버들
하늘가
버들에게 주다
가랑비
서리 달
4. 사랑
무제−여덟 살에 몰래 거울 들여다보고
연대시 4수·봄
무제−어젯밤의 별과 어젯밤의 바람
방 안의 노래
다시 성녀사를 지나며
정월에 숭양의 저택에서
무제−자부에 사는 신선을 보등이라 부르는데
무제−봉황새 문양 비단은 얇아 몇 겹이나 되는지
무제−겹겹 휘장 막수(莫愁)의 방에 깊게 드리워
무제−만나기 어렵지만 이별도 어려워
무제−온다던 말 빈말, 가신 뒤 발길 끊기고
무제−솨솨 봄바람에 날리는 이슬비
무제−어느 곳 슬픈 쟁 소리가
벽하성 3수·제1수
햇살은 비단 창을 비추고
5. 인생
석양루
곡강
안정성루
동관을 나서 반두역의 여관에 묵으며 갈대 무더기에 느낌이 있어
눈에 들어와
비 갠 저녁
바로 오늘
비단 거문고
늦가을에 혼자 곡강을 유람하며
낙유원
날마다
산에 올라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일상의 나날
멀리서 온 편지와 돌아가는 꿈은 빗속에 아련한데,
텅 빈 침상만이 소슬한 가을을 버티고 있다.
섬돌 아래 푸른 이끼와 붉게 물든 나무,
적막한 빗속에서, 수심 띤 달빛 아래서.
端居
遠書歸夢雨悠悠,
只有空牀敵素秋.
階下靑苔與紅樹,
雨中寥落月中愁.
·밤비 내리는데 북쪽에 부치다
그대 내게 돌아올 때 물었으나 아직 기약이 없소,
파산의 밤비에 가을 못물 넘실거리오.
언제나 그대와 서창 아래 촛불 심지 돋우며,
파산의 밤비 올 때를 얘기할 수 있으려나!
夜雨寄北
君問歸期未有期,
巴山夜雨漲秋池.
何當共剪西窗燭,
卻話巴山夜雨時.
·무제 – 만나기 어렵지만 이별도 어려워
만나기 어렵지만 이별도 어려워,
봄바람 힘 잃고 온갖 꽃 시들어 가는데,
봄날 누에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실뽑기를 그치고,
촛불은 재가 되어서야 눈물이 겨우 마른다네.
새벽에 거울 보며 귀밑머리 희어진 것만 근심하지만,
한밤중 시 읊으면 분명 달빛 차가운 것 느끼리라!
봉래산이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파랑새야! 나를 위해 은근히 찾아봐 다오!
無題(相見時難別亦難)
相見時難別亦難,
東風無力百花殘.
春蠶到死絲方盡,
臘炬成灰淚始乾.
曉鏡但愁雲鬢改,
夜吟應覺月光寒.
蓬山此去無多路,
靑鳥殷勤爲探看.
·안정성루
아득하게 높은 성의 백 척 누대,
푸른 버들가지 밖은 온통 모래섬뿐.
가의(賈誼)는 젊은 나이에 헛되이 눈물 뿌렸고,
왕찬(王粲)은 봄이 오자 더 먼 여정에 나섰다.
영원히 기억하리, 강호에 백발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건대, 천지를 돌려놓고 일엽편주를 타리라!
썩은 쥐가 맛있는 것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봉황에 대한 시샘은 끝내 그치지 않는구나!
安定城樓
迢遞高城百尺樓,
綠楊枝外盡汀洲.
賈生年少虛垂涕,
王粲春來更遠遊.
永憶江湖歸白髮,
欲迴天地入扁舟.
不知腐鼠成滋味,
猜意鴛雛竟未休.